2022 녹색자금사업 ‘우리동네 녹색자금 이야기’ 사진ㆍ수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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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이 없고, 장애가 없고, 차별이 없는 길

작품명

계단이 없고, 장애가 없고, 차별이 없는 길

작품 설명

김경진


숲은 고마운 존재다
. 품고 있는 모든 것을 기꺼이 우리에게 내어주고, 세상을 푸른 에너지로 채워준다. 그래서 숲에 가면 저절로 생기가 넘치고 숲을 닮아가게 된다. 숲만큼 좋은 휴식공간이 없는 셈이다.

나에게 숲의 매력을 알려준 건 20년지기 친구였다. 그 친구와는 대학교 1학년 때 같은 과 동기로 만났는데, 하지마비 장애인의 몸으로 매사 삶을 긍정적으로 사는 멋진 사람이었다.

친구에게는 멋진 취미가 있었는데, 바로 수목이 우거진 숲에 가서 시를 쓰고, 짙은 숲의 향기를 맡고,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었다. 친구는 내게 숲으로 들어가서 나무를 향해 호흡하고, 녹음을 바라보며 마음을 정화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는 친구 입장에서는 숲에 오르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친구에게는 숲길의 작은 턱도 높은 문턱이 되고, 깎아 지르는 경사와 계단은 도저히 뛰어넘기 힘든 장애물이었다. 숲에 더 깊숙이 다가가고 싶어도 휠체어로는 갈 수 없는 곳이 더 많았다. 친구는 휠체어를 타고서는 숲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며 늘 아쉬워했다.

친구에게 희소식이 들려온 건 2016년 즈음이었다. 전국 산과 숲에 무()장애나눔길이 생겨 장애인도 큰 어려움 없이 마음껏 숲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산림복지진흥원에서 복권기금인 녹색자금을 활용해 전국에 보행 취약자와 산림을 잇는 무장애나눔길을 만들어 누구나 공평하게 숲의 가치를 누릴 수 있도록 한 덕분이었다.

친구와 나의 첫 무장애 숲 여행은 바다가 보이는 통영 정량 무장애나눔길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통영으로 달려가 이순신공원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저 멀리서 싱그러운 숲길이 우리를 향해 손짓을 건넸다. 대답이라도 하듯 숲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드는 친구의 표정이 눈부시게 빛났다.

데크로드로 들어서는 친구의 몸짓이 경쾌했다. 좌우로 우거진 나무들이 사방에서 초록빛을 발산해 초록양탄자를 타고 나는 것 같다고 했다. 가파르지 않고 평평한 목재 데크로드를 본 순간 내 마음도 부드러워졌다. 장애 없이 마음껏 숲길을 걷고 싶어 먼 길을 달려온 친구가 혹시나 어려움을 겪진 않을까 우려했는데, 모든 걱정들이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데크로드는 휠체어를 타는 친구에게도,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하는 엄마들에게도 편안한 길이었다. 지그재그로 완만하게 설계된 데크로드가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천천히 숲으로 들어가 숲속 공기를 피부로 느꼈다. 뺨을 스치는 공기도, 바람의 맛도 도시에서 느끼던 것과는 달랐다. 상큼한 숲내음이 몸과 마음의 시름을 덜어주었다. 예향의 도시답게 통영 무장애나눔길에는 곳곳에 문학쉼터가 마련돼 있었다. 숲속에서 시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평소 시 읊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는 김상옥 시인의 시조와 청마 유치환 시인의 주옥같은 시들을 소리 내어 낭독했다. 곳곳에는 이야기 나누기 좋은 벤치와 그네가 마련돼 있어 숲의 운치를 더했다.

데크로드를 지나 평평한 황톳길을 따라 걸었다. 노란 황토와 길가에 피어난 풀잎들이 포근함을 더했고, 거대한 나무들이 싱그러운 그늘을 만들어주어 마음까지 시원해졌다. 걸어온 길을 내려다보니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조성된 길이어서 그런지 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숲과 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그 순간, 우리의 눈앞에 눈이 부시도록 푸른 다도해가 펼쳐졌다. 순간 무장애나눔길이 보여준 눈부신 광경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통영 무장애나눔길은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 누구나 평등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733m의 길에 교통약자인 친구가 불편함을 느낄 만한 장애물이 전혀 없었다. 특히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포함된 깨끗한 공기, 아름다운 바다 풍경 등을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도록 길을 조성했다는 점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누구나 장애 없이 편하게 산책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일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세심한 배려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통영 무장애나눔길에서 좋은 추억을 쌓은 우리는 얼마 전에는 인천 남동구 만수산 무장애나눔길에 다녀왔다. 올해 2월에 개통된 만수산 무장애나눔길은 총 길이 2230m로 전국에서 가장 긴 무장애나눔길이었다.

만수산 무장애나눔길 입구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노인, 임산부, 장애인, 유모차 표시물이었다. 일반 보행자뿐만 아니라 보행약자층이 안전하게 숲을 거닐며 산림체험을 할 수 있도록 조성한 길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만수산은 해발 201m지만 등산로가 가팔라 방문객이 적었는데, 무장애나눔길이 조성된 후에는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했다.

만수산 무장애나눔길은 목재 데크로드를 설치하고 보행턱과 계단을 없애서 누구나 부담 없이 산에 오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전 구간을 경사도 8% 미만의 낮은 경사로 조성한데다가 등산로 폭도 2m로 넓게 만들어서 휠체어를 타고 가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특히 데크로드의 코너 부분을 넓게 만들어 휠체어를 타고 코너링을 할 때도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아빠의 무등을 타고 올라가는 꼬마아이와 지팡이를 짚고 걷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이곳이 얼마나 걷기 편한 길인지를 말해주었다. 친구와 나는 길 중간 중간 나무에 걸린 <힘내라, 빛나는 내 인생>, <당신은 소중한 사람> 등의 힐링 문구들을 보며 나아갔다. 좀 힘들다 싶으면 나무 의자로 만들어진 쉼터가 나오고, 좀 지친다 싶으면 시화전이 있어서 쉬어가기 좋았다. 만수산 무장애나눔길은 무장애 등산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만수산 마중애나눔길에서는 만수 8경을 만날 수 있어 더 흥미로웠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1경 만수 무강나무, 2경 바람의 계곡, 3경 잣나무 숲, 4경 삼둥이나무, 5경 만수동 전경, 6경 주상절리, 7경 만수산 연리지를 찾는 재미가 있었다.

새소리를 들으며 쉬엄쉬엄 한 시간여를 오른 끝에 우리는 만수산 정상에 섰고, 그곳에서 만수 8경인 남동구 전경과 마주했다. 눈앞에 인천대교와 송도국제도시, 인천 남동구청 등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산을 올라갈 수 있다는 것, 산 정상 풍경을 친구와 함께 공유하고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내려오는 길에 <함께 걸어 행복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친구를 바라보며 함께 걸어서 행복했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가 나도, 너랑 함께 한 무장애나눔길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어! 우리 다음에 또 여기에 오자!”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한 무장애나눔길에는 계단이 없고, 장애물이 없고, 차별이 없다. 대신 행복이 있고, 웃음이 있고, 함께 하는 마음이 있었다. 누구나 갈 수 있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무장애나눔길을 걸으며 보행약자들의 누릴 권리가 보장되는 것 같아 가슴이 따뜻한 순간들이 많았다.

다양한 생명체들이 어우러져 숲이라는 찬란한 공동체를 이루듯,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더불어 살아갈 때 더욱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숲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숲의 가치를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무장애나눔길이 전국적으로 더 많이 확산되었으면 한다. 앞으로도 친구와 함께 더 많은 무장애나눔길에 우리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