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녹색자금사업 ‘우리동네 녹색자금 이야기’ 사진ㆍ수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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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행복을 담은 숲

작품 설명

최옥숙


아가~ 혹시 무장애나눔길이라고 들어봤니? 너희 집 근처에 있는 관모산에 생겼대. 이번에 우리 손주 태교여행으로 같이 다녀오면 좋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니?”

며늘아기에게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가 들어섰다. 몇 년 전 허망하게 뱃속 아이를 잃은 며늘아기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다시금 화사한 봄을 잉태한 것이다. 덕분에 집안에도 다시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던 며늘아기는 안정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평소 즐겨 찾던 숲에 가서 얼룩진 마음을 내려놓고 맑은 공기를 쐬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혹시 산에 갔다가 몸에 무리가 와 뱃속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진 않을까 걱정되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 TV프로그램에서 보고 수첩에 적어두었던 관모산 무장애나눔길이 떠올랐다. 무장애나눔길은 며늘아기와 같은 임산부를 비롯해 노약자와 장애인 등 보행약자들도 무리 없이 편안하게 산을 오를 수 있도록 복권기금인 녹색자금으로 조성한 숲길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도 누구나 어려움 없이 숲에 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전국에 여러 곳을 조성해 놓았다.

그 중 관모산 무장애나눔길은 관모산 등산로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코스에 만들어진 1.3길이의 숲길이다. 데크길와 흙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평균 경사율은 8% 미만으로 조성되어 모든 사람들이 이용 가능한 산과 숲이라는 산림복지 원칙에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노인인 나도 큰 어려움 없이 산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아 나중에 가보기 위해 적어두었는데, 유산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숲 산책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며느리에게 더없이 좋은 산책길이 될 것 같았다. 특히 푸른 자연 속에서 힐링을 하고 돌아오면 뱃속 손주와 며늘아기의 정서함양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기대가 컸다.

며늘아기에게 관모산 무장애나눔길이 조성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더니 반색을 하며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음날 며늘아기와 함께 찾아간 관모산 무장애나눔길에는 만개한 봄을 실컷 품어보라는 듯 봄기운이 완연했다. 친환경 흙길을 걷는데 며칠째 제법 매섭게 불어온 바람은 간데없고 사위에 봄빛이 너울댔다. 메타세콰이아 나무들 사이를 지나 피부로 스며드는 공기와 바람, 햇살이 더없이 싱그러웠다.

얼마쯤 걸었을까. TV에서 보았던 대로 보행이 원활하도록 목재로 완만하게 만들어진 데크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임신을 한 며늘아기의 몸에도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 경사도가 낮아서 안심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데크길 위에는 다른 임산부들과 내 또래의 노인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이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까르르. 곳곳에서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정겨웠다.

데크길 초입에 붙어 있는 긴 길을 가장 빨리 걷는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라는 응원문구를 보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씽긋 웃었다. 이어서 손을 맞잡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데크길을 따라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호흡도, 발걸음도 편안한 오후의 한때였다.

우리는 울울창창한 나무들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숲을 걷는다는 것은 생명의 길을 걷는 일과도 같다. 나는 오감을 다 동원해 폐부 깊숙이 청명한 숲의 공기를 불어넣었다. 머리가 맑아지면서 나도 모르게 ()~’하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곁에 선 며느리도 가슴을 활짝 열고 온몸으로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흡수하고 있었다.

숲에 취해 한참을 걷던 우리는 데크길에 마련돼 있는 쉼터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장애나눔길에는 걷다가 쉬고 싶을 때면 언제나 쉴 수 있도록 일정 구간마다 쉼터와 벤치가 배치돼 있었다. 우리와 같은 보행약자 입장에서는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장소였다.

하늘은 마치 파란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청명하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꽃들은 초록빛으로 찬란했다. 나뭇잎들의 소곤거림과 새들의 지저귐은 마치 자연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같아 황홀하기까지 했다.

다시 일어나 데크길을 걷는 며늘아기의 얼굴엔 웃음꽃이 끊이질 않았다. 길이 완만한 덕분에 전혀 힘든 기색이 없어 다행이었다. 관모산 무장애나눔길에 와서 오롯이 숲을 느끼고 갔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며늘아기에게 닿은 것 같아 마음이 푼푼해졌다.

갑자기 며늘아기가 내 손을 끌어가 자신의 배위에 가져다 댔다. 숲속에서 느낀 편안하고 행복한 감정이 뱃속에 있는 손주에게도 전해졌는지 힘찬 태동으로 답을 했다.

우리는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했다. 무장애나눔길 중간에 마련된 숲속도서관에서는 느긋하게 앉아 책을 읽었다.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나비 한마리가 한동안 우리를 따라오며 즐거운 산책길을 동행했다. 며늘아기의 표정이 해사했다. 잠시 스쳐간 한때의 추위를 이겨내고 봄볕 아래 다시 활짝 웃는 며늘아기의 미소가 사랑스러웠다.

관모산 무장애나눔길에서 마주한 온기 가득한 봄처럼 며늘아기의 마음에도 따뜻한 봄이 찾아온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토록 애가 타게 기다리던 봄날이었다. 한겨울 모진 바람과 추위를 견뎌내고 기어이 꽃 봉우리를 틔운 며늘아기가 무척 대견했다.

데크길 종점에 다다르니 소원걸이대가 보였다. 이미 무장애나눔길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이 써놓은 소망들이 소원걸이대 위에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나는 뱃속 손주가 무사히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소원을 적어서 걸어두었다.

무장애나눔길을 끝까지 걸어간 나는 머지않아 태어날 손주를 데리고 며늘아기와 함께 꼭 관모산 무장애나눔길을 다시 찾아오리라 다짐하며 길을 돌아내려왔다.

그 후로도 며늘아기와 나는 종종 관모산을 찾아 몸과 마음을 힐링하며 삼림욕을 즐겼다. 천천히 걸으며 느긋하게 숲을 둘러볼 수 있는 까닭에 며늘아기는 만삭이 되어 몸이 무거워진 후로도 부담 없이 관모산 무장애나눔길을 찾아가곤 했다.

무장애나눔길에서 꾸준히 숲 태교를 한 덕분일까. 얼마 안 있어 곧 며늘아기는 건강한 손자를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다.

 

요즘 나는 주말이 되면 며늘아기와 함께 네 살이 된 어린 손자를 데리고 관모산 무장애나눔길을 찾는다. 관모산에서 숲 태교를 한 덕분인지 손자는 유독 숲에만 가면 신이 나서 데크길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숲속도서관에서 손자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넒은 길 위에서는 손자와 장난도 치면서 보내는 이 시간이 내 삶에서는 더없이 소중한 순간이다.

누구나 불편 없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만든 숲길이 우리 곁에 있다는 건 마음이 든든해지는 일이다. 관모산 무장애나눔길은 노인인 나도, 임산부였던 며늘아기도, 어린 손자도 언제나 부담 없이 찾아가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담은 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