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녹색자금사업 ‘우리동네 녹색자금 이야기’ 사진ㆍ수기 공모전

  1. Home
  2. 수기작품

작품명

생활밀착형 산림치유 뿌리내리기

작품 설명

김인정


아버지와 나는 산책 친구다
. 한 달에 한두 번, 서로를 만날 때마다 집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 대신 대모산 무장애나눔길로 향한다. 숲길을 걷는 내내 무뚝뚝한 대화뿐이지만, 편하게 마음을 나누며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줄곧 혼자였다. 자식들도 모두 출가를 한 탓에 말상대조차 없이 쓸쓸하게 지냈다. 이른 나이부터 객지생활을 시작한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전해오는 쓸쓸함을 마음으로만 헤아릴 뿐 표현에는 늘 인색한 딸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과 외로움이 아버지에게 독()이 되었던 것일까.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뇌출혈이었다. 어머니를 지키지 못한 후회로 당신의 가슴에 계속 생채기를 낸 결과였다. 아버지의 몸과 마음이 무너질 때까지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자식으로서 죄송스러워 견디기 힘들었다.

뇌출혈이라는 병은 아버지로부터 호탕한 웃음을 빼앗아갔다. 퇴원 후 천만다행으로 일상생활은 가능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병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가벼운 산책을 해보라는 의사의 말에 아버지는 그저 아득한 고층 아파트 주변을 생기 없이 터벅터벅 오고갈 뿐이었다.

문득 등산을 즐겼던 과거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산 여러 개를 넘나들 정도로 건강해 젊은 시절에는 전국 방방곡곡의 산을 돌아다녔다. 어릴 적 가끔씩 아버지를 따라 산에 가곤 했는데, 매번 발걸음이 빠른 아버지의 뒤를 억지로 쫓아가느라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렸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자연이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줄 아느냐며 어떻게든 내가 등산에 취미를 붙일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그때는 너무 힘이 들어 산속 풍경은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당시를 떠올린 나는 아버지와 가벼운 등산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곧장 아버지를 모시고 본가 뒤편에 자리한 산으로 향했다. 숲 사이로 난 흙길은 더없이 편안해 보였지만, 아버지는 숨이 차오르고 힘에 부쳐서인지 발걸음이 꽤 무거워보였다.

산에 오니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하면서도 가파른 경사와 계단 앞에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아버지는 얼마 오르지도 못하고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 누구보다도 산을 좋아했는데, 힘겨워서 중도에 포기하고 마는 아버지가 안타까워 마음이 쓰렸다.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나는 대모산에 무장애나눔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장애나눔길은 산림복지 혜택에서 소외된 약자층(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등)도 불편함 없이 편하게 숲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산책로였다. 한국산림복지진흥원에서 복권판매 수익금으로 마련된 녹색자금을 이용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숲길을 조성한 것이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아버지 댁으로 달려가 아버지, 대모산 무장애나눔길은 경사가 8% 이하로 완만해서 아버지처럼 보행이 어려우신 분들도 큰 어려움 없이 숲을 산책할 수 있어요. 보행약자를 고려해서 휠체어도, 유모차도 다닐 수 있고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나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도 의지만 있으면 산에 오를 수 있도록 산책로를 만들어 준 것 같구나.”라며 반색했다.

여세를 몰아 그 길로 아버지와 같이 대모산으로 향했다. 호젓한 대모산 숲길로 들어서자 지그재그로 데크길이 펼쳐져 있었다. 무장애나눔길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유모차를 끈 젊은 엄마부터 다리를 절뚝이며 걷는 중년 아주머니, 머리 희끗한 노인분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보행약자들도 큰 어려움 없이 산을 향해 오르는 모습을 보곤 아버지도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는지 힘을 내어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데크길 위에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음을 내딛으며, 마음속에 자리한 근심과 걱정을 털어냈다. 경사가 완만하고 계단이 없어서 걸을 만 하다고 말하는 아버지를 보니 무장애나눔길에 모시고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제가 어렸을 때 숲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서 누구나 숲에 오면 행복해진다고 말씀하셨던 거 기억나세요? 숲은 천천히 걸어 올라가야 자연이 내뿜는 향기도 맡을 수 있고, 풍경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고 알려주셨잖아요.”

힘겨워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또박또박 앞을 향해 걷는 아버지를 응원해드리고 싶었다. 나는 기억 속 어딘가에서 아버지가 내게 해주었던 말을 소환해 고스란히 다시 전해드렸다. 그리고 천천히 걸으셔도 되요. 그래야 숲을 제대로 느끼실 수 있죠!”라고 말했더니 아버지가 나를 보며 빙그레 웃는다. 숲을 통해 당신께 행복을 되찾아주고 싶었던 자식의 마음을 느꼈는지, 아버지는 더욱 힘을 내어 앞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숲속 깊숙이 들어간 우리는 두 팔을 열고 온 몸으로 숲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숲은 우리에게 모든 상처를 다 내려놓고 편히 쉬었다 가라고 가만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들의 의연한 자태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꽃망울을 틔운 들꽃들을 보면서 새삼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오래 전 아버지가 어린 내게 알려주고자 했던 산의 특별한 기운이 이제야 제대로 이해되는 것 같았다. 하늘도, 나무도, 풀잎도, 아버지까지도, 내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온통 반짝거렸다.

우리 딸이랑 같이 숲길 걸으니까 참 좋다. 오래전부터 이렇게 해보고 싶었거든. 이게 다 무장애나눔길 덕분이야. 무장애나눔길은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 상을 줘야 돼! 내가 다녀본 곳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힐링로드거든!”

아버지의 말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마음속에 눈부신 태양이 떠오른 것 같아 뿌듯했다.

지금도 나는 꾸준히 시간을 내 아버지와 함께 대모산 무장애나눔길에 다니고 있다. 그때마다 대모산 무장애나눔길은 아버지의 병든 몸과 나의 지친 마음을 따스하게 보듬어주었다. 무장애나눔길에 다닌 덕분에 아버지는 체력을 회복했고, 나 역시 지친 삶에 활력을 얻었다. 무엇보다 마음과는 달리 서로에게 무심한 듯 살아왔던 아버지와 내가 산에 오르면서 서로에게 다가가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자연을 매개로 소통을 이뤄가고 있다.

무장애나눔길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도 큰 어려움 없이 걸을 수 있어 우리에게는 더 없이 좋은 힐링장소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숲길을 걷는 소소한 행복이 일상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무장애나눔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행복을 일깨워 준 대모산 무장애나눔길이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달해주었으면 좋겠다